[리뷰-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과거 TV 방송을 탔다는 이유일지도 모르지만 참 유명한 책이다. 개인적으로 박완서의 수필들을 몇 권 읽었지만, 그나마 '추천도서' 목록에 오를 만큼 유명한 책은 이게 처음인데, 여태 읽지 않은 이유는 그저 청소년용 소설(?) 정도로 치부했던 까닭이다. (사실 '싱아'가 뭔지,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궁금하긴 했다) 여태껏 연이 닿질 않다가 어쩌다 눈에 띄어 읽게 되었는데… 이게 전혀 예상했던 내용이 아니다.
우리나라 기록의 역사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 중 하나로 생각되는 해방 이후 6.25 사변 언저리의 시대적 배경과, 다름 아닌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의 작가의 생애를 통해 일제강점기, 이념, 전쟁, 혼돈으로 점철된 시기에 우리네 일반인들이 어떻게 살아 버텨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그리 밝기만 한 분위기의 소설은 아니다. 화자인 작가의 인생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되 감정에 쓸리지 않고 최대한 담담하고 담백하게, 여느 박완서의 수필처럼 그렇게 차분한 소설이다. 그 와중에, 온갖 모순적인 언행을 보이는 어머니와 어린 작가의 과거와 현실을 넘나드는 성찰이 곳곳에 살아 있어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타자의 시각으로만 보면 웃음을, 자신의 주변에 투영시켜 보면 짠 한 애증(?)이 느껴지는 소소한 재미들. 그리고 화자의 그런 관찰력과 성찰에서 이후 작가로서의 박완서를 엿보는 느낌도 나고. (인과가 맞지 않지만)
다만, 즐기는 소설의 입장으로만 보면, 전쟁의 시작 즈음에 끝을 맺기 때문에 여느 소설처럼 모든 갈등구조의 해소 또는 끝맺음을 제시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소설의 결말처럼 카타르시스가 극대화된 소설은 아니라는 것.
책을 덮고 나서 한참을 어머니, 외할머니의 과거 일부를 들여다 본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단지 시대가 비슷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끝에 든 의문은… '내 이후 세대들은 이 이야기에서 어떤 느낌을 받을까'였다. 점점 희박해지는 연결점 때문에 완벽한 허구의 소설이나 지구 반대편 이야기, 혹은 조선시대 이전의 머나먼 과거의 일로 치부하지는 않을지.
작가의 집필 활동은 멈췄지만, 그의 글은 오래오래 회자되고 재생되었으면 좋겠다.

덧1.
중간중간 박완서 고유의 우리말 쓰기가 눈에 띄는데, 아쉽게도 과거 일제강점기에 사용하던 말들과 혼용되고 있다. 편집부에서 일부러 그런 내용을 개정하지 않았다고 밝히긴 했지만, 따로 표시해 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교육적 측면에서.

덧2.
사실 e-book으로 읽었는데, 왠지 모르게 판매 중지되었단다. 무슨 까닭일까?

내 나라야 어느 지경에 가 있든지 간에 땅 파먹는 것보다는 붓대 놀려 먹고사는 걸 더 낫게 치고, 이왕 붓대를 놀리려면 관청에서 놀리는 걸 더 높이 여긴 걸 보면, 양반의식 중에서 선비 정신은 빼버리고 아전근성같이 고약한 것만 남아난 게 우리 집안의 소위 근지가 아니었나 싶다.
전형적인 속물의 세계에서 별안간 우뚝 솟은 어떤 정신의 높이를 본 것 같은 환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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